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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동산책
yalizo
2019. 5. 12. 20:37
20190511
이른 아침이다. 6시30분
집을 나와 역시나 운동을 위해 달립니다.
열심히 운동을 마치고,
잠시 휴식을 거지던 중
갑자기 무슨 연유에선지 명동이란 장소가 떠올랐습니다.
자리를 박차고 나와 명동으로
출발!!!
명동은 일제강점기 일본인들의 주거지로 개발되어 남촌이라 불리던 동네 였습니다.
일본인들의 생활 터전을 만들기 위해 상업시설이 들어서기 시작하였고,
그로 부터 발전하기 시작하여, 문화와 금융의 중심지를 거쳐 현재는 수많은 관광객들의 쇼핑스팟으로 진화한, 서울의 대표 번화가이자 중심지(Downtown)가 되었습니다.
남산1호터널의 끝자락
명동이 시작 되는 곳.
도심의 거리이긴 해도 옛추억을 생각하며
산보 하듯 걷기 시작 했습니다.
골목골목
기웃기웃
이런 촌넘이 없을 겁니다.
이른 아침 인적이 드물긴 했지만 이내 외국인들이 북적이네요.
올려진 사진으로 저의 루트를 상상해 보세요...ㅋㅋㅋ
거리에 차량은 많지 않았고 거리에 사람 조차 많지 않은 시간.
남산1터널로 올라 가는 길은 교통체계의 정비를 위해 공사 중이더군요. 조금 복잡한 곳이긴 했지요.
솔직이 작자에겐 미안하지만 무척 가볍단 느낌의 건물이더군요. 큰 건물을 너무 자잘한 디자인 요소로 디자인하여 시각적인 혼돈이 있는 건물이라 생각합니다.
이른 시간이라 그리 사람들이 많이 보이진 않더군요.
어릴적 명동의 분위기 하곤 사믓 많이 변해 보이는 군요.
일본인지
미국인지
한국말은 안보이네요.
인근에 외국인들, 아마도 중국이거나 일본인 일 듯한 사람들...
뭐 그리 물건들이 좋아 보이진 않던데....
그래두 팔리면 장땡이겠죠?
1966년 창업한 그래도 우리 나라에선 역사를 가진 식당으로 만두 칼국수를 주메뉴로 하고 있지요.
밀가루가 풍부하지 않던 시절 메밀을 이용해
메밀국수를 만들었다 합니다.
예전엔 명동이 달러의 암거래 장소여서
그로 인한 사건 사고가 뉴스에 많이 오르 내리곤 했었지요.
사진 한방 날리니...먼가 하구 쳐다 보는데 그 눈빛은 별로 였네요.
하나 팔아 줄 수도 있었는데....
어찌 되었건 딸기 향이 풍기고
그 신선한 붉은 빛이 눈길을 끄는건 어쩔 수 없군요.
비닐이라도 씌워 팔았으면 싶더군요.
미세먼지 딸기가 될까 걱정이 되더군요.
젊은이는 폰을 들고 길을 찾고
나이든 이는 묻고....
일제때 지어진 건물로 잘 보존 해야 할 것입니다.
낭화관(浪花館),명치좌(메이지좌)라고도
불렸던 명동에 위치한 극장입니다.
1917년 경성부 중구 명치정에 세워 진
조그마한 목조 건물로 건립하였다 합니다.
처음에는 일본 연극을 시연했지만,
1935년경에는 영화가 상영 되었고, 그 후에 2층
벽돌조 건물로 개조되어, 수용인원 3~4백명 정도의 그럴싸한 극장이 되었답니다.
해방 후, 명동극장으로 이름을 바꿔 영화 재개봉관으로 운영되어 오다가, 1974년 6월 25일 폐관 후, 금융사에 인수되어 사무실로 사용되었다하고,
이후 나라에서 인수 하여 극립극장으로서 명동예술극장으로 재개관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비싼 땅
좁디 좁은 골목으로 들어서 봅니다.
한쪽으로 자그마한 식당이 운영 중이었고,
골목 저 끝에서 중절모를 쓴 아저씨가 다가 오는데, 순간 머리를 스친 생각은 일제시대 즈음으로 돌아 간 듯한 느낌?..
아침을 거른터라 들어가 보았습니다.
노오란 놋쇠로 만든 젓가락
요즘 보기 힘든 물건이죠..
놋그릇 대접에 밥을 깔고, 수육을 얹은 다음 맑은 육수를 부어 내는 곰탕이죠.
무척이나 맑은 육수에
밥과 수육의 모습이 그대로 보여지는군요.
맑은 육수의 깔끔함과 생파의 상큼함이 어우러져
속이 개운하지요.
결국, 국물까지 남김없이 다 먹었습니다.
2019 미슐랭 가이드에 올랐다지만 종업원들의 친절도란 별로....
곰탕 일반 13,000원 가성비 무척 낮지요....
하동관의 역사는 1939년 서울시 중구 청계천변 수하동에서 시작 되었다 합니다.
이후, 3대에 걸쳐 70여 년간 한자리에서 서민들의 배를 따듯하게 채워 주었다죠.
하지만 2007년 6월 1일 청계천 일대 도시재개발사업이 진행되면서 지금의 명동입구, 외환은행 뒤편으로 이전하여
한국 전통 탕반(湯飯) 문화의 맥을 계승하고 있습니다.
상점이 즐비한 골목 끝으로
저 멀리 남산타워가 한 눈에 들어 오네요.
저 멀리 보이는 느티나무는
예나 지금이나
그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반대편 방향에 비하면 무척이나 조용한 느낌의 분위기 더군요.
고딕양식의 건축물입니다.
80년대 민주화운동의 본산이기도 합니다.
당시 대부분의 민주화운동은 명동성당을 중심으로 펼쳐졌었지요.
웅장한 붉은 벽돌과 회색벽돌을 섞어 지은 조적조의 대성당을 볼 수 있습니다.
첨탑을 바라다 보려니
아침 나절의 태양 빛에 눈부셔
마치 함부로 범접 할 수 없는 공간에 드는 것 같은 성스러움이 느껴 집니다.
최초 성당을 배치하면서 의도 된 것이 아닐까 하는 상상을 해 봅니다.
명동 인근에서 가장 높은 위치에 성당을 지어
인근 어디에서든 바라 다 볼 수 있게 하였던 것이지요.
도시의 풍경은 고딕의 아취가 있는 과거와 현대의 도시를 오가는 경계에 선 듯한 느낌 이더군요.
가시관(멸류관)을 머리에 쓴 예수의 모습을 대리석을 이용해 투박하게 표현하였는데 그 느낌은 가슴 깊이 울림이 있더군요.
세개의 대못......
예수가 십자가에 메달릴 적에 두손과 발을 뚫었던 그것 이겠지요.
이미 여름의 초록으로 뒤덮혀 커다란 그늘을 드리우고, 뜨거운 볕을 피해 쉬어 갈 자리를 내어 주고 있습니다.
그 남쪽에는 성모마리아의 두손 모은 동상을 맞이 할 수 있습니다.
신자라면 모두들 그 앞에 예를 갖추려
두손 모으곤 하지요.
작지만 스테인드 글라스로 마무리 하였군요
저 건물이 없었다면 인왕산이 보였을 것입니다.
물론 경복궁 또한 보였겠지요.
한때 고교시절엔 이 곳에서 미사를 보곤 했었고, 또한 연말엔 이 곳의 공간을 빌어 행사를 치루 곤 했었지요.
간절한 기도
그 경건함이 전해 옵니다.
주변개발에 대항해 마지막까지 살아 남아 보고자 하는 아우성이 들릴 정도입니다.
아마도 조만간 헐리지 않을까 싶은데
건축하는 사람으로서 건축물의 시대상을 남긴다는 차원에서 남아 주었으면 싶으네요.
최근 지어진 현대식 건물 숲 사이에
그 명을 부지하고 남아 있군요.
간신히 빗겨 살아 남은 자그마한 교회의 모습이 보이는 군요
애잔한 몸부림이 느껴 질 지경 입니다.
Center coffee
드립커피를 팔더군요.
평소 먹어보기 힘든 무려 9000원짜리 커피
콜럼비아 커피 Cerro Azul(쎄로아줄)을 주문했습니다.
젊은 바리스타의 정성스런 드립핑을 보며
마음이 여우로워 지더군요.
은은하게 전해 오는 커피향을
한껏 즐겼습니다.
산미가 강한 녀석이더군요.
그 한 켠 투박하게 구멍 난 부분에
새알 형상의 촛대가 들어 앉은 모습이 무척 이채롭습니다.
아마도 의도적인 연출이었을 것이란
생각을 해봅니다.
간결한 느낌의 인테리어가 돋보이더군요.
자그마한 쿠키 세 점은 시고 쓴맛의 커피와 어우러져 커피의 풍미를 더해 주는 군요.
토요일 아침, 혼자 음미하는 커피
나만의 소박한 즐거움이었습니다.
전면우리를 통해 주변을 둘러 조망 할 수 있어 너무도 좋았습니다.
창 밖에 보이는 벤취는 의도된 오브제일거란 생각이들고, 저 벤취는
coffee란 글자를 형상화 한 것 이었음을 감지합니다.
무척이나 의도 된 디자인 임이 느껴 집니다.
안으로 들어가면 명동의 역사를 설명하는 전시물이 있고 휴식이 가능한 조경공간이 조성되어 있습니다.
사진의 기업은행빌딩이 이를 따르고 있군요.
유리벽을 커튼처럼 걸었다하여 커튼월 빌딩이라 부릅니다.
조각가 Robert Indiana의 작품입니다.
다시금 택시를 타고 강남으로 갑니다.
창 밖엔 저 멀리 남산타워가 쏜살같이 사라 지네요.
이렇게 오늘의 명동산책을 마무리 합니다.
오늘의 명동 산책코스
이른 아침이다. 6시30분
집을 나와 역시나 운동을 위해 달립니다.
열심히 운동을 마치고,
잠시 휴식을 거지던 중
갑자기 무슨 연유에선지 명동이란 장소가 떠올랐습니다.
자리를 박차고 나와 명동으로
출발!!!
명동은 일제강점기 일본인들의 주거지로 개발되어 남촌이라 불리던 동네 였습니다.
일본인들의 생활 터전을 만들기 위해 상업시설이 들어서기 시작하였고,
그로 부터 발전하기 시작하여, 문화와 금융의 중심지를 거쳐 현재는 수많은 관광객들의 쇼핑스팟으로 진화한, 서울의 대표 번화가이자 중심지(Downtown)가 되었습니다.
남산1호터널의 끝자락
명동이 시작 되는 곳.
도심의 거리이긴 해도 옛추억을 생각하며
산보 하듯 걷기 시작 했습니다.
골목골목
기웃기웃
이런 촌넘이 없을 겁니다.
이른 아침 인적이 드물긴 했지만 이내 외국인들이 북적이네요.
올려진 사진으로 저의 루트를 상상해 보세요...ㅋㅋㅋ
거리에 차량은 많지 않았고 거리에 사람 조차 많지 않은 시간.
남산1터널로 올라 가는 길은 교통체계의 정비를 위해 공사 중이더군요. 조금 복잡한 곳이긴 했지요.
솔직이 작자에겐 미안하지만 무척 가볍단 느낌의 건물이더군요. 큰 건물을 너무 자잘한 디자인 요소로 디자인하여 시각적인 혼돈이 있는 건물이라 생각합니다.
이른 시간이라 그리 사람들이 많이 보이진 않더군요.
어릴적 명동의 분위기 하곤 사믓 많이 변해 보이는 군요.
일본인지
미국인지
한국말은 안보이네요.
인근에 외국인들, 아마도 중국이거나 일본인 일 듯한 사람들...
뭐 그리 물건들이 좋아 보이진 않던데....
그래두 팔리면 장땡이겠죠?
1966년 창업한 그래도 우리 나라에선 역사를 가진 식당으로 만두 칼국수를 주메뉴로 하고 있지요.
밀가루가 풍부하지 않던 시절 메밀을 이용해
메밀국수를 만들었다 합니다.
예전엔 명동이 달러의 암거래 장소여서
그로 인한 사건 사고가 뉴스에 많이 오르 내리곤 했었지요.
사진 한방 날리니...먼가 하구 쳐다 보는데 그 눈빛은 별로 였네요.
하나 팔아 줄 수도 있었는데....
어찌 되었건 딸기 향이 풍기고
그 신선한 붉은 빛이 눈길을 끄는건 어쩔 수 없군요.
비닐이라도 씌워 팔았으면 싶더군요.
미세먼지 딸기가 될까 걱정이 되더군요.
젊은이는 폰을 들고 길을 찾고
나이든 이는 묻고....
일제때 지어진 건물로 잘 보존 해야 할 것입니다.
낭화관(浪花館),명치좌(메이지좌)라고도
불렸던 명동에 위치한 극장입니다.
1917년 경성부 중구 명치정에 세워 진
조그마한 목조 건물로 건립하였다 합니다.
처음에는 일본 연극을 시연했지만,
1935년경에는 영화가 상영 되었고, 그 후에 2층
벽돌조 건물로 개조되어, 수용인원 3~4백명 정도의 그럴싸한 극장이 되었답니다.
해방 후, 명동극장으로 이름을 바꿔 영화 재개봉관으로 운영되어 오다가, 1974년 6월 25일 폐관 후, 금융사에 인수되어 사무실로 사용되었다하고,
이후 나라에서 인수 하여 극립극장으로서 명동예술극장으로 재개관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비싼 땅
좁디 좁은 골목으로 들어서 봅니다.
한쪽으로 자그마한 식당이 운영 중이었고,
골목 저 끝에서 중절모를 쓴 아저씨가 다가 오는데, 순간 머리를 스친 생각은 일제시대 즈음으로 돌아 간 듯한 느낌?..
아침을 거른터라 들어가 보았습니다.
노오란 놋쇠로 만든 젓가락
요즘 보기 힘든 물건이죠..
놋그릇 대접에 밥을 깔고, 수육을 얹은 다음 맑은 육수를 부어 내는 곰탕이죠.
무척이나 맑은 육수에
밥과 수육의 모습이 그대로 보여지는군요.
맑은 육수의 깔끔함과 생파의 상큼함이 어우러져
속이 개운하지요.
결국, 국물까지 남김없이 다 먹었습니다.
2019 미슐랭 가이드에 올랐다지만 종업원들의 친절도란 별로....
곰탕 일반 13,000원 가성비 무척 낮지요....
하동관의 역사는 1939년 서울시 중구 청계천변 수하동에서 시작 되었다 합니다.
이후, 3대에 걸쳐 70여 년간 한자리에서 서민들의 배를 따듯하게 채워 주었다죠.
하지만 2007년 6월 1일 청계천 일대 도시재개발사업이 진행되면서 지금의 명동입구, 외환은행 뒤편으로 이전하여
한국 전통 탕반(湯飯) 문화의 맥을 계승하고 있습니다.
상점이 즐비한 골목 끝으로
저 멀리 남산타워가 한 눈에 들어 오네요.
저 멀리 보이는 느티나무는
예나 지금이나
그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반대편 방향에 비하면 무척이나 조용한 느낌의 분위기 더군요.
고딕양식의 건축물입니다.
80년대 민주화운동의 본산이기도 합니다.
당시 대부분의 민주화운동은 명동성당을 중심으로 펼쳐졌었지요.
웅장한 붉은 벽돌과 회색벽돌을 섞어 지은 조적조의 대성당을 볼 수 있습니다.
첨탑을 바라다 보려니
아침 나절의 태양 빛에 눈부셔
마치 함부로 범접 할 수 없는 공간에 드는 것 같은 성스러움이 느껴 집니다.
최초 성당을 배치하면서 의도 된 것이 아닐까 하는 상상을 해 봅니다.
명동 인근에서 가장 높은 위치에 성당을 지어
인근 어디에서든 바라 다 볼 수 있게 하였던 것이지요.
도시의 풍경은 고딕의 아취가 있는 과거와 현대의 도시를 오가는 경계에 선 듯한 느낌 이더군요.
가시관(멸류관)을 머리에 쓴 예수의 모습을 대리석을 이용해 투박하게 표현하였는데 그 느낌은 가슴 깊이 울림이 있더군요.
세개의 대못......
예수가 십자가에 메달릴 적에 두손과 발을 뚫었던 그것 이겠지요.
이미 여름의 초록으로 뒤덮혀 커다란 그늘을 드리우고, 뜨거운 볕을 피해 쉬어 갈 자리를 내어 주고 있습니다.
그 남쪽에는 성모마리아의 두손 모은 동상을 맞이 할 수 있습니다.
신자라면 모두들 그 앞에 예를 갖추려
두손 모으곤 하지요.
작지만 스테인드 글라스로 마무리 하였군요
저 건물이 없었다면 인왕산이 보였을 것입니다.
물론 경복궁 또한 보였겠지요.
한때 고교시절엔 이 곳에서 미사를 보곤 했었고, 또한 연말엔 이 곳의 공간을 빌어 행사를 치루 곤 했었지요.
간절한 기도
그 경건함이 전해 옵니다.
주변개발에 대항해 마지막까지 살아 남아 보고자 하는 아우성이 들릴 정도입니다.
아마도 조만간 헐리지 않을까 싶은데
건축하는 사람으로서 건축물의 시대상을 남긴다는 차원에서 남아 주었으면 싶으네요.
최근 지어진 현대식 건물 숲 사이에
그 명을 부지하고 남아 있군요.
간신히 빗겨 살아 남은 자그마한 교회의 모습이 보이는 군요
애잔한 몸부림이 느껴 질 지경 입니다.
Center coffee
드립커피를 팔더군요.
평소 먹어보기 힘든 무려 9000원짜리 커피
콜럼비아 커피 Cerro Azul(쎄로아줄)을 주문했습니다.
젊은 바리스타의 정성스런 드립핑을 보며
마음이 여우로워 지더군요.
은은하게 전해 오는 커피향을
한껏 즐겼습니다.
산미가 강한 녀석이더군요.
그 한 켠 투박하게 구멍 난 부분에
새알 형상의 촛대가 들어 앉은 모습이 무척 이채롭습니다.
아마도 의도적인 연출이었을 것이란
생각을 해봅니다.
간결한 느낌의 인테리어가 돋보이더군요.
자그마한 쿠키 세 점은 시고 쓴맛의 커피와 어우러져 커피의 풍미를 더해 주는 군요.
토요일 아침, 혼자 음미하는 커피
나만의 소박한 즐거움이었습니다.
전면우리를 통해 주변을 둘러 조망 할 수 있어 너무도 좋았습니다.
창 밖에 보이는 벤취는 의도된 오브제일거란 생각이들고, 저 벤취는
coffee란 글자를 형상화 한 것 이었음을 감지합니다.
무척이나 의도 된 디자인 임이 느껴 집니다.
안으로 들어가면 명동의 역사를 설명하는 전시물이 있고 휴식이 가능한 조경공간이 조성되어 있습니다.
사진의 기업은행빌딩이 이를 따르고 있군요.
유리벽을 커튼처럼 걸었다하여 커튼월 빌딩이라 부릅니다.
조각가 Robert Indiana의 작품입니다.
다시금 택시를 타고 강남으로 갑니다.
창 밖엔 저 멀리 남산타워가 쏜살같이 사라 지네요.
이렇게 오늘의 명동산책을 마무리 합니다.
오늘의 명동 산책코스